2016년 9월 22일 목요일

운칠기삼 - 불운도 운이다

지도교수 20주년 기념식에 참석했다. 오랜만에 선후배들을 만나 지난 얘기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나와는 거의 이십년이나 차이나는 후배들도 있었다. 이제 취업을 준비하는 재학생 후배들이 내게 조언을 구했다. 어떻게 구글에 입사할 수 있느냐고.

나는 한 후배에게 평소에 꾸준하게 전공관련 실력을 쌓을것과 기술면접을 통과하기 위한 면접 기술 그리고 도전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한마디도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듣던 후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거기까지가 그래봐야 3할이다. 나머지 7할은 운이라고 알려줬다. 최상의 컨디션이어야 하고 나와 합이 잘맞는 면접관을 만나야 하고 등등. 후배는 잠시 혼란스러워했지만 나의 추가설명을 듣고 이해가 된듯했다.

그 자리에서는 긴 이야기를 하지 못할 상황이라 자세히 이야기하지 못한것이 있다. 불운도 운이라는 이야기.

10년전 유명한 해외 기업에 지원하겠다고 결심했을때 주위에 조언을 구할만한 사람이 없었다. 선후배나 지인중에 외국기업에서 근무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레쥬메를 쓰는것부터 면접을 어떻게 보는지에 대해서 물어볼 사람이 없었다. 할수없이 인터넷과 짐작으로 공부를 했다. 전공 서적부터 당시에 유행하는 개발방법론까지 도움이 될 것 같으면 모조리 훑었다. 그러다보니 실제로 입사에 도움이 되지 않는 준비도 했었다.

자기소개 프리젠테이션을 영어로 준비했었는데 꽤 열심히 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기술면접에서 자기소개는 분위기를 만들기위한 인사정도일뿐 내가 상상했던 그럴듯한 프리젠테이션 분위기와는 거리가 있었다. 실무면접이니까.

나는 내 인생 최고의 프로젝트 3개를 뽑아서 어떤 프로젝트였고 문제가 무엇이었고 어떻게 풀었는지를 압축한 슬라이드를 만들었다. 마지막엔 그 3가지 프로젝트보다 더 중요한 프로젝트가 가족이라며 마무리를 했다. 그걸 영어로 연습을 했고 돈까스집에서 회사 동료에게 시연을 하기도 했다. 처음엔 파워포인트로 슬라이드를 만들었는데 마음에 들지않아서 맥북이라는 고가의 노트북을 구입해서 발표자료를 따로 만들었다. 생각해보면 정말 쓸데없는 곳에 시간과 자원을 낭비한 셈이었는데 알려줄 사람이 없으니 어쩌겠나. 불운이었다.

면접날이었다. 두 명이 마주보며 회의를 할 수 있는 크기의 하얀 책상 한쪽에 앉아서 첫 면접관을 기다렸다. 긴장은 했지만 준비해간 하얀 맥북을 일부러 보이라고 책상 한쪽끝에 놓고 살짝 열어두었다. 약속 시간을 한참 넘겨서 면접관이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면접실에 들어왔다. 외국에서 온 면접관이 서울 강남의 교통체증 때문에 늦은것이다. 급하게 오느라 미리보고 와야할 내 레쥬메를 읽어보지 못했다. 당황한 모습이 역력했다. 이때다 싶어서 재빨리 제안을 했다. 내게 5분만 주면 내 소개를 간단하게 하겠다고. 원래 15분짜리 프리젠테이션이었지만 단 1분이 소중한 순간이었다. 달리 방법이 없던 면접관앞에서 짧은 영어로 내 가족소개까지 끝냈다. 그 다음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자칫 시작부터 꼬일뻔했는데 내 마음속으로는 홈런을 날렸고 나는 그날 마지막 면접까지 모든걸 쏟아부었다. 5분짜리 자기소개가 7시간의 면접에서 어떤 역할을 했을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내 열의만큼은 7시간을 지배하고 남았을것이다. 첫 5분이 답답한 마음으로 온갖 준비를 했던 간절함에 불을 질렀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몇주후에 합격 전화를 받을수 있었다.

운이 없어 쓸데없는 것까지 준비해야 했는데, 또 한번의 불운은 그것을 행운으로 바꿔주었다. 운칠기삼이라 했는데 돌아보면 불운도 운이었다.

어쩌면 '기삼'이 지극하면 행운도 불운도 크게 상관없는 것일수도...

2016년 7월 22일 금요일

공유경제 vs. 전통경제


긴 여행후 공유산업에 대한 시각이 좀 바뀌었다. 혁신이긴 한데, 오프라인에서 오랫동안 다져진 검증 시스템과 안전망이 결여되어 있음을 절실하게 느꼈다. 품질검증과 안전보장을 무자격의 사용자에게 떠넘기고 있음을 알았다. 인터넷 업계에 몸담고 있지만, 소프트웨어 혁신의 한계를 경험했다고 할까.

하와이였다. Airbnb로 아파트유닛 예약했는데 알고보니 은퇴자 아파트였다. 열쇠를 받기위해 집주인을 만나야하는데 정문이 아니고 눈에 안띄는 곳에서 만나자고 할때부터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집안이 지저분하고 냄새가 심했다. 밤에 심한 바람과 창문앞 고속도로 때문에 소음이 심했는데 창문마져 깨져있어서 잠을 이루기 힘들었다.

집주인이 처음에 은퇴자 아파트라 사람들이 소음에 예민하다고 신신당부해서 거의 죽은듯이 지냈는데 우린 소음때문에 잠을 설쳤다. 배수관이 막혀서 부엌싱크와 세탁기에서 물 역류했다. 그럼에도 집주인이 이 집은 자기 부모님 은퇴후 유일한 수입원이라며 사정해서 리뷰는 쓰지 않았다.

Airbnb의 다른 사용자들을 생각하면 당연히 리뷰를 써야하지만, 상대는 회사가 아니라 개인이라는 것 때문에 결국 쓰지 않았다. 무자격 서비스 제공자, 사용자 수준에서 이뤄지는 품질검증, 문제발생시 절차부재, 상업용이 아닌 물건이 상업용으로 거래되는 등 공유경제의 한계를 경험했다.

비효율적이고 선택의 폭이 좁다고 생각했던 오프라인 숙박서비스는 오랜시간 품질검증과 안전망을 구축해왔던것임을 깨달았다. 전문화된 조직을 만들고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부분에 집중을 하면서 나름대로 최적화를 했던것이다. 그리고 비효율이라고 생각했던것이 경험에서 만들어진 완충장치였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다.

반면 "전통"적인 서비스가 환경변화에 적응하는 것도 경험했다. 미니밴이 필요해서 하와이에서 UberXL을 탈 계획을 세웠다. 하와이에 도착했는데 왠일인지 UberXL 서비스 불가였다.  6인가족, 짐 12개 들고 낯선 공항에서 당황했다.

우왕좌왕하는데 옆에서 어떤 남자가 808-233-3333에 전화 해보라고 얘기해줬다. 그 남자는 가족과 하와이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전화로 낯선곳의 위치를 설명하는게 쉽진 않았지만 택시회사는 10분만에 미니밴을 보내줬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택시기사에게 팁까지 줬는데 UberXL 예상요금보다 낮았다.

내가 전화했던 곳은 하와이 로컬 택시회사 Charley's Taxi였음. 예약앱이 있어서 하와이 머무는 동안 앱에서 예약, 지정 시간 픽업, 예상요금 계산, 예약된 택시 모니터링 기능으로 Uber가 필요없게 되었다.

택시 기사들과 우버에 대해서 이야기해봤다. 원래 택시기사 자격증을 따려면 꼬박 두달은 하와이 돌아다니면서 길 익혀서 시험을 봐야하는데, 우버는 심지어 하와이 주민도 아닌 사람들이 운전한단다. 이런 사람들이 보험도 없이 운전을 하기때문에 사고가 나면 승객이 덤터기를 쓴단다.

Charley's Taxi는 택시마다 택시회사 컨트롤 센터와 통신하는 시스템이 설치되어 있었다. 잠깐 곁눈질로 본 바로는 경로탐색, 요금계산 등의 기능도 탐재되어 있었다. 전산화가 상당히 잘 되어 있었다. 손님들은 앱 또는 전화로 컨트롤 센터와 이야기하고 컨트롤 센터는 소속 택시들을 관리하는 구조.

컴퓨터 시스템이 잘 구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택시 기사들의 경험과 "비효율적" 중복 시스템이 필요한 시점이 많았다. 단 1분이 소중할때 컴퓨터 지도에 나와있지 않는 경험적 교통정보로 시간을 단축한다든지, 평균 10분정도 걸리는 전화방식의 신용카드결제대신 기사의 스마트폰으로 바로 결제를 하면서 망가질뻔한 우리 가족 스케쥴을 구해주기도 했다.

절실하게 느낀게 실세계는 최적경로탐색 이상으로 고려해야할 별별 변수가 많다는 것. 결정적으로 나라는 인간이 가장 복잡한 변수다.

정리하면, 내가 가장 필요할때 "공유경제" 서비스는 그 자리에 없었다. 내가 난처할때 그 책임을 나한테 떠맡기고 모른채 했다. 그래서 "공유경제" 나빠가 아니라, 공유 경제가 전통경제에서 배워야할 것이 아직 많다는 생각을 했다. 너무 익숙해서 몰랐는데 이전 시대의 혁신을 세월을 거치며 나의 복잡한 요구사항을 맞춰주고 있었다. 예를 들어, 전화가 혁신이었고 오랜시간 개선을 해온 기술이었던것. 808-233-3333이라는 짧은 번호가 충분히 많은 가입자들에게 번호가 주어지면서도 누구라도 쉽게 기억할 수 있도록 고민한 결과였던 것을 고생을 해보고야 알게되었다.

개인적인 경험이라 일반화하기엔 어렵지만, 공유경제는 전통경제에서 배워야할게 많고, 위태해 보였던 전통경제는 지속적으로 개선만한다면 미래에도 살아남을수 있다고 느꼈다. 전통경제 너 생각보다 단단한 애구나. 그동안 인터넷 좀 한다고 무시해서 미안.

2016년 4월 1일 금요일

미국 테크 기업에서의 나이

미국에서 (엔지니어를 기준으로) 직원 채용시 나이로 차별하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레쥬메에 나이를 명시하지도 않고. 우리 회사에서도 면접이나 채용심사시에 나이에 대한 선입견을 갖지 않도록 일상대화에서조차 조심하도록 훈련을 시킨다.

사실 회사에서나 일상생활에서 나이를 물어보는 경우가 거의 없다. 한국 사람들끼리 만났을때나 아주 가끔 돌려선 물을 뿐이다. 그러다보니 나이로 상하관계를 따지지 않게 된다. 회사에서 같이 일하는 동료들과도 편하게 지내고. 회사에 5-60대의 개발자들도 꽤 있고 평소에는 나이를 감지하지 못할정도록 격의없이 지낸다.

반대로 매니저가 나보다 어린 경우도 많다. 알고보면 20대인데 회사의 중역으로 좋은 성과를 내는 사람도 종종 만난다. 그러다보니 부하직원이 나보다 나이가 많다고 고민을 하거나 상사가 어리다고 기분나쁠 일이 별로 없다.

물론, 그렇다고 나이에 대한 선입견이 전혀 없는건 아니다. 그런게 없다면 회사에서 따로 훈련을 하거나 법을 만들 필요도 없을테니까. 대체로 나이가 들수록 신경써야할 일이 많아진다. 가족을 챙겨야하고 병치레도 잦아진다. 집중하기가 힘들어지는 것이다. 또, 야근 등의 장시간 근무도 힘들다. 체력이 달리는 것이다. 따라서, 젊은 사람들과 동등한 경쟁은 힘들다.

나이값을 쳐주지 않는 사회에서는 자연스럽게 뒤쳐지게 되는 것이다. 실리콘밸리 테크 기업은 직원 평균 연령은 25-35세 사이라고 한다. 나이가 많아질수록 밀려나는 것이다.

나이에 대한 차별은 없지만 경쟁이 심한 곳이 미국 테크기업이 아닐까 싶다.

2016년 3월 3일 목요일

제2차 기계 시대 - 변화의 시대

다음주면 이세돌9단과 인공지능 알파고가 세기의 바둑대결을 펼칩니다. 여러분은 누가 이길것 같나요? 인공지능과 우리의 미래에 대해 썼던 글을 하나 소개합니다. 과연 인류는 발전하는 인공지능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기술발전은 인류역사에서 변곡점을 만들어왔다. 어떤 기술이 역사를 바꿔왔을까. 엘빈 토플러는 “제 3의 물결”이라는 책에서 농업혁명이 첫 번째 물결이었다면 산업혁명이 두 번째 물결이고 정보혁명이 세 번째 물결이라고 주장했다. 농업혁명은 사회를 수렵채집 사회에서 농경사회로 바꿈으로서 인류 문명이라는 걸 가능하게 만들었다. 두 번째 물결은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변화시킨 산업혁명이다. 마지막 물결은 1950년이후 정보사회로의 변화를 말한다.

한편, MIT 교수 에릭 브린뇰슨앤드류 맥아피는 다른 관점에서 기술발전이 인류역사에 미친 영향을 분석했다. 증기기관 이후의 시대를 제1차 기계시대로 보고 컴퓨터 시대를 제2차 기계시대로 규정했다. 이들은 세계 인구변화와 사회발전추이를 주목했다. 시대별 세계 인구변화를 보면 오랜 기간 별 변화가 없다가 최근 천년동안 변화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19세기부터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것이 보인다.

그림 1. 인구변화율 
저작권: 공개 도메인, 위키피디어(http://en.wikipedia.org/wiki/Sustainability)

인구만 급격하게 변화한 것이 아니다. 역사학자 이안 모리스Ian Morris의 사회개발지수(Social Development Index)라는 것이 있다. 사회개발지수는 에너지 포획량, 도시 개발, 전쟁 능력, 정보 처리 능력을 기준으로 사회의 개발 정도를 측정하는 지수다. 이안 모리스에 따르면 사회개발지수도 최근 몇백년간 갑작스럽게 증가했다.

브린뇰슨과 맥아피는 폭발적인 인구증가와 사회발전의 이유로 1781년 증기기관의 발명을 든다. 증기기관은 산업혁명의 핵심 동력이 되었고 사회전반을 변화시켰다. 생산성, 즉 동일한 투입량에 대한 생산물의 비율이 엄청나게 증가했다. 증기기관이 모든 산업에 뿌리내리는 데 몇 십년이 걸렸지만 그 이후 인류 문명은 완전히 달라졌다. 사람의 노동과 동물의 힘만을 이용할 수 있었던 시대에서 기계의 힘을 빌어 불가능하게 보였던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증기기차와 증기배로 더 빨리 더 자주 더 멀리 여행하게 되었고, 공장은 대량생산이 가능해졌고 산업혁명의 핵심기술로 자리잡아 중산층을 낳는데 도움을 주었다. 이것이 제1차 기계 시대의 시작이다.

제1차 기계시대, 저항, 번영

제1차 기계시대인 산업혁명을 살펴보자. 증기기관이 산업혁명 시대의 공장을 접수하면서 생산성이 빠르게 증가했다. 동시에 저임금 단순노동자를 공장밖으로 몰아냈다. 노동자를 고용하는 것보다 기계를 도입하는 것이 더 큰 이윤을 만들어내면서 노동자들은 기계로 대치되었다. 노동자의 근육이 기계와의 경쟁에서 밀린것이다.

19세기초 영국 방직 공장에서는 공장 노동자들이 방직기계를 파괴하고 공장을 불태우는 상황이 벌어졌다. 러다이트 운동이 그것이다. "기계에게 죽음을. 기계는 우리 미래와 꿈을 짓밟아"라는 구호로 영국사회를 휩쓸었던 러다이트 운동은 기술발전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기술발전으로 만들어진 부를 어떻게 분배해야할지에 대해서 고민하는 계기를 만들기도 했다.

이후 증기기관은 전동기와 내연기관으로 발전하면서 더욱 생산성을 높였다. 그렇지만 기술발전이 노동자들을 벼랑끝으로 몰고가리라는 염려와 달리, 노동자들은 신기술이 가져온 새로운 산업으로 자연스럽게 흡수되었다. 제1차 기계시대가 진행되면서 부의 총량과 개인에게 돌아가는 소득이 모두 불어났고 실업률은 떨어졌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특히 미국에서) 중산층이 다수로 등장하고 이들이 민주주의의 핵심이 되었다. 말하자면 기술 발전이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영역까지 바꾸어 놓았다고 볼 수 있다.

컴퓨터 기술의 특징 - 디지털, 기하급수, 조합 혁신

컴퓨터가 등장하면서 인간이 정보를 다루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증기기관이 근력을 대체했다면 컴퓨터는 뇌의 능력을 대체하는 것이다. 증기기관이 인류역사의 변곡점을 만들면서 제1차 기계시대를 열었다면 이번에는 컴퓨터가 새로운 변곡점을 만들면서 제2차 기계시대를 연 것이다. 컴퓨터 기술이 가진 특징은 무엇일까?

디지털이다
컴퓨터 세상의 정보는 모두 디지털이다. 디지털은 물리적 세상에 두 다리를 내리고 사는 인간에겐 피부에 와닿지 않는 개념이다. 디지털 정보는 손에 만져지는 것이 아니다. 디지털 정보는 거의 공짜로 복제가 가능하다. 더 흥미로운 것은 복제한 정보가 원본과 완벽하게 같다는 것이다. 또한 디지털 정보는 지구상에 어느 곳으로든 거의 실시간으로 전달할 수 있다. 무한 복제, 무(無)열화, 실시간 전송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아날로그 사고방식으로는 이해가 불가능한 개념이다. 음반산업을 예로 들자. 아날로그에서는 음반을 복사하여 낱장을 팔때마다 이익을 남겼다. 음반을 복제 생산하는 데에는 노력이 들어가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다. 어릴적에 친구가 빌려준 카세트 테이프를 공테이프에 복사했던 기억이 난다. 복사본은 항상 원본에 비해 품질이 떨어졌다. 복사본을 복사하면 품질이 더 떨어진다. 이런식으로 복사를 하다보면 듣지못할 수준이 된다. 그래서 매장에서 판매하는 원본을 구입하는 것이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그런데 디지털로 넘어오면서 어떻게 되었나. 클릭 한번으로 음악을 완벽하게 복사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런 세상에서 아날로그를 기준으로 음악파일을 복제할때마다 비용을 청구하는 음반사가 있다면 장사가 될까.

기하급수다
컴퓨터 업계에서는 유명한 무어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인텔의 공동 창업자인 고든 무어가 발견하여 1965년에 발표한 법칙이다. 반도체 집적회로의 성능은 2년마다 두배로 증가한다는 법칙이다. 무어는 이 법칙을 발표할 당시에 앞으로 한 10년 정도는 이 법칙이 맞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당시로서는 대담한 미래 예측이었다.

그런데 무어의 예상과 달리, 무어의 법칙은 수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맞아떨어지고 있다. 더 놀라운 것은 직접회로의 성능이 2배로 증가하는 기간이 2년에서 18개월로 줄었고 지금은 더 빨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경험하는 물리적 세상은 대부분 선형적으로 변한다. 공을 공중에 던지면 대충 어느 지점에 떨어질지 예상할 수 있다. 크게 보면 공이 날아가는 속도는 선형적이기 때문이다(공의 속도는 변하지만 기하급수적으로 변하지 않는다). 이런 세상에서 살아가는 인간이 머리로는 기하급수를 이해할 수 있지만 실제로 적응하기는 어렵다.

기하급수적 증가라는 것은 깊게 생각하면 소름이 끼칠일이다. 예를 들어, 1년에 두 배씩 성장하는 시스템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첫해에 1만큼 생산했다면 다음해에는 2를 생산하고 그리고 다음해에는 4를 생산할 것이다. 여기까지 보면 별로 대단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이렇게 10년이 지나면 1024만큼 생산을 하게 된다. 이해가 안되는가. 2를 10번 곱해보자. 1024다. 또, 10년이 더 지나면 1,048,576(~백만)이 되고 또 10년이 지나면 10억이 넘어간다. 이제 감이 오는가. 기하급수적 증가는 초기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폭발이라는 단어로밖에 표현이 안되는 상태가 된다.

컴퓨터 세상의 거의 모든 산업이 기하급수적 그래프 위에 놓여있다. 불과 20년전 방 하나를 가득채웠던 세계 최고의 수퍼컴퓨터는 이제 우리가 매일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휴대전화의 성능앞에 무릎을 꿇는다. 인터넷에 공개된 지식도 거의 매년 두배씩 증가한다. 인터넷을 통해 주고 받는 데이터의 양도 매년 두배씩 증가한다.

무슨 말인고 하니, 아날로그 시대의 사고방식으로는 디지털 기술의 변화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얘기다.

조합 혁신이다 
십 몇년전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 직장선배가 그랬다. 인터넷에 더 이상 혁신은 없다고. 나올 것은 이미 다 나왔다고. 어떤면에서는 맞는 말이다. 당시에도 그랬고 그 이후로도 인터넷에 새로 등장하는 서비스들은 이미 그전에 써먹었던 아이디어였다. 아이러브스쿨이 있었고 프리챌이 있었고 싸이월드가 있었다. 미국에서는 마이스페이스가 있었고 페이스북이 있었으며 트위터가 있었다. 이미 써먹은 아이디어를 계속 우려먹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혁신의 기본 성질이다. 기존에 있던 것들을 조합하여 새로운 가치를 만든 것 말이다.

2007년 처음 발매된 아이폰은 거의 15년전에 개발된 애플의 뉴턴이라는 PDA를 떠올리게 한다. 뉴턴은 실패하고 사라졌지만 PDA를 시장에 소개한 최초의 제품이었고 PDA시장의 다음 주자인 마이크로소프트 포켓 PC로 이어졌다. 하지만 포켓 PC도 대중화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그런데 스티브 잡스는 대중화에 성공하지 못했던 PDA와 휴대전화를 조합하여 스마트폰이라는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냈다. PDA나 휴대전화나 이미 있는 기술이지만 이것을 조합하여 완전히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낸것이다.

다른 기술들은 어떤가. 손목 시계는 천년이 넘은 기술이다. 이것을 컴퓨터와 조합하여 스마트 시계라는 혁신을 만들었다. 자동차가 컴퓨터와 결합하여 자율주행 자동차로 거듭났다. 안경은 어떤가. 오래된 안경 기술이 컴퓨터와 결합하여 구글 글래스가 되었다.

해 아래 새 것이 없다고 그랬던가. 새 것은 없을지 모르나 새로운 조합은 항상 있다. 경제학자 폴 로머Paul Romer는 “경제 성장은 사람들이 자원을 가지고 더 나은 가치를 만드는 방식으로 다시 짜맞출때 일어난다”라고 말했다. 이것이 제2차 기계시대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일이다.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들이 백만번도 더 써먹었던 기술들을 새롭게 조합하면서 혁신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자동화, 연결된 세상 

우리 세대가 지나기 전에 인류가 경험할 것이 두 가지 있다. 일반 지능을 갖춘 인공지능의 출현과 지구상의 모든 인간이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살펴보자.

인공지능분야가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컴퓨팅 성능이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고 빅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가 장족의 발전을 하면서 특정 분야에서는 인공지능이 인간을 앞서기 시작했다.

1997년 IBM에서 개발한 딥블루Deep Blue 슈퍼 컴퓨터가 세계 체스 챔피언 개리 카스파로프Garry Kasparov과 맞붙었다. 카스파로프는 역대 최고의 체스 선수로 알려져 있었다. 경기는 딥블루의 승리로 끝났고 이후 인간은 체스 경기에서만큼은 컴퓨터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컴퓨터 성능은 갈수록 좋아져서 예전 같으면 방 안을 가득채우고 있을 슈퍼컴퓨터를 이제는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시대가 되었다. 참고로, 삼성 갤럭시 S5 스마트폰에 내장된 그래픽 처리기는 딥블루 성능의 몇십배를 자랑한다.

제퍼디!Jeopardy!라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퀴즈쇼가 있다. 제퍼디! 퀴즈쇼 역사상 최강의 지식인은 무려 74번이나 연속으로 우승했던 켄 제닝스Ken Jennings다. 제닝스는 우리나라와도 인연이 있다. 아버지를 따라 한국에 와서 11년동안 어린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그런 제닝스에게 2011년 2월 IBM의 슈퍼컴퓨터 왓슨Watson이 도전장을 낸다. 정확히는 두 명의 역대 인간 챔피언에게 도전했다. 경기는 싱겁게 끝났다. 왓슨의 완승이었다.

제퍼디!는 간단한 퀴즈쇼가 아니다. 인간의 언어를 이해할 뿐만 아니라 반어법, 중의법, 수수께끼, 농담, 미묘한 어감 등을 이해해야 하는 퀴즈쇼다. 단순지식을 묻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운명같은 일이지만 제닝스는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프로그래머였다. 그는 컴퓨터가 소리를 듣고 언어를 이해하고 다시 사람의 언어로 반응을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았다. 퀴즈쇼에서 왓슨을 이긴다고 확신했단다. 컴퓨터 따위에게 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 날의 퀴즈쇼를 마치고 자신이 골동품처럼 느껴졌다고(“I felt obsolete.”) 고백했다. 인공지능의 발전속도는 컴퓨터 전문가들의 예상마저 깨뜨리고 있는 것이다.

왓슨은 이제 분야를 바꿔 의학을 공부하고 있다. 병을 진단하고 처방을 내리는 일에 종사하고 있단다. 왓슨외에도 인공지능과 컴퓨터 소프트웨어가 한때 인간의 두뇌로만 가능했다고 여겨졌던 분야로 발을 넓히고 있다. 야구경기를 보고 스포츠 기사를 작성해주고, 회계사를 대신하여 연말 정산을 하고, 심지어 자동차 운전까지 한다.

그 다음은, 일반지능이다. 지금까지는 특정 분야에만 특화된 인공지능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진짜 인간처럼 분야에 관계없이 스스로 학습하고 개념을 정립하여 실세계의 다양한 문제를 풀어낼 수 있는 진짜 지능이다. 딥마인드DeepMind와 같은 회사들이 초기 단계이긴 하지만 일반 인공지능 개발에 상당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

추세로 보면 이 세대가 지나기전에 일반 인공지능을 경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 세대가 경험할 또 하나는 전 인류가 인터넷으로 연결된 세상이다. 국제전기통신연합ITU에 의하면 2014년 말에는 전세계 인터넷 사용자가 24억명에 도달할 것이라고 한다. 이는 전세계 인구의 40%에 달하는 수치이다. 지금 인터넷 지도자들의 관심은 아직 인터넷에 접속하지 못하고 있는 나머지 60%다. 구체적으로는 다음 10억명의 인터넷 사용자the next billion Internet users라는 주제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다음 10억명은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 등 주로 아시아의 개발도상국에 집중될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아프리카도 서서히 성장하고 있는데 아프리카는 주로 모바일 사용자를 중심으로 인터넷 사용자 인구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전세계가 연결되고 일반 인공지능이 등장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이상향을 기대한다면 사람들은 노동에서 해방되고 인공지능을 갖춘 로봇 머슴이 하나에서 열까지 거들며 인간 주인은 여가를 즐기는 행복한 세상이 될 것이다. 묵시록의 세상을 예상한다면 어느날 각성한 스카이넷이 조종하는 로봇군단이 핵전쟁을 일으키고 인간들은 멸종의 위기를 맞거나 컴퓨터가 만든 가상공간인 매트릭스안에 살면서 생체배터리로 전락할 것이다. 실제는 양 극단의 중간 지점쯤에 있을텐데 이상향이든 로봇제국이든 지금으로서는 조금 먼 미래다. 우리 세대에 나타날 기술이라면서 무슨 먼 미래냐고? 사실은 우리는 지금 이미 미래에 살고 있고, 인공지능의 출현과 인터넷으로 연결된 인류가 보게 될 현상을 실제로 경험하고 있다. 걱정해야 할 일이 있다면 지금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걱정해야한다.

기계와 경쟁하는 인간, 소득불평등, 부의 집중 

제1차 기계시대의 기술혁신은 생산성을 높여 부의 총량을 키웠다. 총량뿐 아니라 개인의 소득도 꾸준히 늘렸다. 증기기관 등에 의해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이 비교적 빠르게 새로운 산업으로 정착했다. 자동차가 말과 마차를 도로에서 몰아내면서 마부의 일자리를 없앴지만 운전과 도로공사라는 새로운 일자리도 만들었다. 기술은 자본과 전문기술에 편향적으로 부를 분배하는 경향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200년간 사회의 허리로 중산층이 등장했고 소득이 비교적 고르게 분배되었다고 본다.

제2차 기계시대도 부의 총량을 키우고 있다. 전보다 더 빠르게. 이번에는 컴퓨터가 지식 노동자들을 몰아내고 있다. 물론 새로운 일자리도 만들고 있다. 그런데 제1차 기계시대와 다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통계에 의하면 미국의 GDP는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데 반해 실제 가계 소득은 90년대 후반부터 갈수록 줄고 있다. 이게 무슨 소린가. 전체 파이는 커졌는데 개인에게 돌아가는 파이조각의 크기는 줄었다는게 무슨 뜻인가.

그림 3. 실질 GDP 및 실질 가계 소득 중앙값 변화.
파란선은 1993년 기준 실질 GDP 증가 추이, 붉은선은 1993년 기준 실질 가계 소득 중앙값 증가 추이. 시간이 지날수록 GDP와 가계 소득이 벌어지고 있음.

부의 총량은 불었지만 늘어난 부는 극소수의 상위권 소득자가 가져갈 뿐만 아니라 통계적으로 보면 시간이 지날수록 나머지 계층의 그나마 있던 소득까지도 잠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산층을 이루던 블루 칼라, 화이트 칼라 노동자들이 로봇과 인공지능 소프트웨어와 경쟁하면서 밀려나고 있는 것이다. 반면 로봇 등의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자본과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등의 디지털 엘리트 그리고 국경이 없어진 디지털 세상에서 성공하는 극소수의 혁신가들에게 부가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2012년 모바일 사진 공유 서비스인 인스타그램이 페이스북에 1조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액수에 팔렸을 때 직원이라고는 고작 15명 정도였다고 한다. 창업한지 불과 2년이 안된 회사였다. 페이스북이 인스타그램을 인수하기 몇 달 전에 상징적인 사건이 하나 있었는데, 120년 넘게 사진과 카메라 시장을 이끌었던 코닥이 파산을 신청한 것이다. 전성기때는 사진 혁신의 아이콘으로 13만 5천명의 직원을 거느렸던 회사가 무너진 것이다.

코닥이 호령하던 시대에 찍었던 사진의 양은 스마트폰이나 디지털 카메라로 찍히는 사진의 양에 비교할 수가 없다. 19세기 인류가 찍었던 사진의 총합보다 오늘 매 2분마다 찍는 사진이 더 많다. 페이스북에만 하루 3억장의 사진이 올라간다고 한다. 불과 15명의 혁신가들이 13만 5천명이 받들던 세상보다 몇 천배나 큰 우주를 창조한 것이다.  코닥과 인스타그램의 예는 디지털 혁신이 바꾸는 세상을 극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제1차 기계시대에도 기술혁신이 노동자들을 일터에서 몰아냈었다. 하지만 농장과 공장에서 일터를 잃은 노동자들은 새로운 산업으로 재배치되었다. 제2차 기계시대에도 디지털 기술이 옛 일터를 없애면서 새 일터를 만들고 있다. 문제는 기술발전의 속도를 사회변화가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 기술은 매년 거의 두배씩 성장하고 있는데 정부 정책, 법, 사회변화는 제자리 걸음을 한다는 얘기다. 기술산업에서는 자고 일어나면 혁신이 일어나는 데 정부나 사회도 이런 혁신이 가능한지 고민해봐야 한다.

경쟁이 아니라, 기계와 함께

일반 인공지능이 등장할 날이 머지 않았다. 인류는 기계와의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 사형선고는 내려졌고 형장에 붙들려 갈 순간을 기다린다는 얘긴가. 인간은 골동품이 되고 말것인가.

체스 얘기로 돌아가보자. 딥블루 사건 이후 프리스타일 체스라는 종목이 생겼다. 체스 경기에서 선수가 컴퓨터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컴퓨터와 사람이 짝이 되는 것이다. 프리스타일 경기에서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왔다. 프리스타일 경기의 우승자는 체스 그랜드마스터도 아니고 최고성능의 컴퓨터도 아니었다. 더 주목할 것은 최고의 체스 선수와 최강의 컴퓨터 조합이 반드시 우승하는 것도 아니었다. 프리스타일에서 우승하는 팀은 사람과 컴퓨터가 협력하여 최고의 시너지를 내는 팀이었다. 이런팀에서 사람은 주로 전체적인 전략을 짜고 컴퓨터는 정확한 전술적 계산을 맡는다고 한다.

프리스타일 체스는 제2차 기계시대를 살아갈 우리에게 중요한 실마리를 던져준다. 인간은 기계와 경쟁구도가 만들어지는 순간 내리막길로 들어설 것이다. 반대로 기계를 이용하면 오르막길이 수월해진다. 기계의 힘을 빌어, 기계와 함께, 기계와 협력하여 더 큰 가치를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

문제는 기계의 힘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사용할 것이냐다. 사회는 맹렬히 달려가는 기술에 두려움을 느끼고, 직장을 잃은 노동자들은 새 시대에 필요한 훈련을 받지 못하고, 교육 시스템은 산업혁명 시대의 틀에 묶여있고, 정부는 기술혁신을 따라가지 못하고, 정치인들은 변화하는 세상을 이해하지 못한다. 미래를 위해 함께 고민할 때가 되었다.

인디언 격언에 “중요한 결정을 할때는 7세대 이후의 후손까지 생각하고 하라”는 말이 있다. 7세대면 한 150년 정도를 내다보고 고민을 하라는 얘기다. 지금 우리가 하는 결정이 과거의 유산을 지키기 위한 것인지 우리 아들 딸과 그들의 후손들이 살아갈 미래를 위한 것인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팀 오라일리Tim O’Reilly의 말을 인용하며 마친다.
“우리는 미래를 담보로 과거를 구할게 아니라, 과거로부터 미래를 지켜야 합니다.”
"Policy should protect the future from the past, not the past from the future."

2016년 2월 25일 목요일

단 한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다, 미국의 특수 교육

우리집 막내 아이는 왼쪽 귀가 기형으로 태어났다.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기형인 귀 때문에 태어나서 바로 뇌 검사를 받아야 했다. 태아 시절 귀가 발달할 때 문제가 있었다는데 이건 뇌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자칫 심각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막내를 임신했을 때 우리는 기형아 검사를 하지 않기로 했었다. 검사를 권하는 의사 선생님께 설령 기형아임을 안다해도 아이를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차라리 하지않고 낳을 거라고 하였다. 그렇게 낳은 아이인데 세상에 나오자마자 이상이 있는지 검사를 해야한다니 가슴이 철렁했다. 다행히 뇌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막내답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만큼 귀여웠다. 그렇지만 우리 막내아이는 3살이 훌쩍 넘도록 말을 잘 못했다. 막내가 한살때 미국에 와서 우리말과 영어 사이에서 혼란스러운가보다라고 생각하기에는 어휘의 양이 적고 발음이 많이 어눌했다. 자기가 말하는 바를 다른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해서 짜증내는 경우도 많았고 프리스쿨preschool에서 친구들과 의사소통을 못해서 마음 아픈 일도 있었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가벼운 왕따를 당하기도 하고 때로 기죽은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프리스쿨 담임 선생님도 소아과 병원의 선생님도 언어 치료speech therapy를 받을 것을 권했다. 알아보니 산타클라라 카운티Santa Clara County(쿠퍼티노시는 산타클라라 카운티 소속) 교육부에서 제공하는 SELPA(Special Education Local Plan Area)라는 특수교육 프로그램이 있었다.

SELPA는 출생시부터 22세 사이의 장애아를 위한 무료 프로그램이다. 산타클라라 SELPA담당자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편지를 보냈다. 이후 교육부 담당자에게 연락을 받고 절차를 밟아서 그해 9월부터 일주일에 한번씩 언어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
Date:  Jun 4th, 2012
To:  Michele OOOO
SELPA Director
Santa Clara County Office of Education

From:  Dong-Hwi Lee
OOOO OO Drive, #OO, San Jose 95129
(408) OOO-OOOO

RE: Speech delay
Dear SELPA director,

I’m writing to you because I have a concern with my 4-year old son’s speech delay.
His pediatrician and preschool teacher recommended IEP program offered by school district, so here I am requesting an assessment for OOO Lee’s language development.
You can reach me at OO@gmail.com or (408) OOO-OOOO (cell).

Thank you,

Dong-Hwi Lee
(Father of O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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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치료 선생님은 그 분야에서 전문적인 교육을 받고 오랫동안 프로그램을 운영해온 분이었다. 막내를 직접 테스트하고 장기간 면담을 하면서 아이의 언어 수준이 표준 언어 발달단계로 보면 두 살 정도이고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서 개선이 필요한지 짚어주었다.

그리고 교육과정과 부모가 유의할 사항에 대해서 서류를 한장 한장 넘겨가며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예를 들어, 우리 아이가 다른 주로 이사를 가더라도 지금 넘기는 서류만 들고가면 국가에서 제공하는 무료 특수 교육을 어디에서나 받을 수 있다, 이 아이에 대한 평가 결과와 특수교육 여부는 모두 개인정보 보호를 받고, 초등학교에 입학할 경우에도 해당 학교나 담임교사에게도 아이의 특수한 상태에 대해서는 비밀로 지켜지고, 교육부에서 특수교육 교사를 따로 제공한다고 알려주었다. 또, 필요한 경우 아이와 부모에게 정부에서 의료보험을 제공하고 무료 식사도 신청할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아이를 특수교육 과정에 넣으면서 감동을 받았다. 특수교육 과정 신청절차에서 그 누구도 우리에게 미국 체류 신분이나 우리 가족의 소득 상황에 대해서 묻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가 중심이었고, 이 아이에게 다른 아이들과 동일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음을 몸으로 체험했다.

미국은 모든 게 돈으로 움직인다. 캘리포니아 학생 10명당 1명꼴로 특수교육을 받는다고 한다. 특수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데에는 적지않은 예산이 들어간다. 캘리포니아는 20%에 가까운 교육예산이 특수교육에 쓰인다. (우리 아이를 특수교육 과정에 넣을 당시를 기준으로)대공황 이래 최대의 경제 위기속에서도 지속적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것은 그만한 의지가 있다는 얘기다.

막내는 1년 동안 꾸준히 교육을 받았다. 아이의 특수 교육에는 부모들의 참여도 필요하다. 매주 숙제가 나오면 부모가 아이와 함께 숙제를 해야 한다. 그 주간의 주제에 대해 부모가 아이를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에 대한 방법까지도 편지의 형태로 아이손에 딸려온다. 여간 부담스러운게 아니었다. 나도 부모로서 상당한 정성을 쏟아야 했다.

1년 후 막내는 다시 언어 능력 테스트를 보았고 언어 능력이 또래 아이들 표준을 능가하면서 특수교육 프로그램을 졸업할 수 있었다. 막내는 1년 사이에 몰라보게 달라졌고 프리스쿨과 유치원kindergarten에서 인기있는 학생이 되었다. 그전보다 훨씬 더 활발해졌다. 이제는 너무 말이 많아서 고민할 정도가 되었다. 초등학생이 된 막내는 책에 빠져서 엄마 말을 듣지 않는다고 엄마가 스트레스트를 받는 정도다. 막내는 초등학교 1학년을 마치면서 쿠퍼티노 학군 교육감이 언어능력 성취도가 높은 아이에게 주는 상을 받았다. 부모가 얼마나 자랑스러워하는지 상을 받은 본인은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도 그 상장을 한번씩 쳐다보며 미소짓곤 한다.

미국 사람들은 미국 교육의 경쟁력이 한국과 같은 나라에 비해 많이 떨어진다고 걱정한다. 실제로 평균적인 미국 학생의 학업 능력은 다른 나라에 비해 한참 뒤진다. 그런데도 나는 미국 교육에서 희망을 본다. 장애가 있어도 아이를 포기하지 않는 교육정신에서(적어도 취지면에서 그리고 개인적인 경험에서는) 나는 희망을 보았다. 장애가 있건 없건, 백인이건 흑인이건, 불법체류자건 시민권자이건, 부모가 부자이건 가난하건 모든 아이는 배울 권리가 있다. 

나는 미국의 특수교육과정을 경험하면서, 공교육의 목적은 장애가 있건 없건 모든 아이들이 성숙한 시민이 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데 있다고 믿게 되었다. 공립학교는 잘 하는 학생을 더 잘하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뒤쳐지는 학생을 포기하지 않고 평범한 학생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설령 가망이 전혀없는 학생이라 할지라도.

미국이 이 정신을 잃지 않는다면 아직 희망이 있다.

2016년 2월 11일 목요일

미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 글은 <실리콘밸리 견문록>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지구 문명은 어느 정도 수준이며 미래는 어떤 모양일까. 미래를 정확하게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과거를 토대로 방향성을 분석하여 예측할 수 있을 뿐이다. 미래는 사람들이 소망하는 낙원의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인가, 아니면 영화처럼 로봇이 지배하는 디스토피아가 될것인가.

문명의 발전 단계 

구소련의 천문학자 니콜라이 카르다쇼프가 제안한 카르다쇼프 척도라는 것이 있다. 우주 문명의 발전 단계를 문명의 에너지 사용량을 토대로 분류한 것이다. I, II, III 유형의 3단계로 구분한다. 1 단계는 행성에 내리쬐는 별 에너지, 우리로 치면 지구에 쏟아지는 태양 에너지를 완전히 사용하는 단계다. 약 10에서 100페타와트 정도를 사용하는 문명이다. 이 정도 문명은 날씨를 자유자재로 조절하고 행성 전체를 지배한다.

2단계는 행성 에너지를 모두 사용하고 이젠 항성 에너지를 사용하는 문명이다. 약 400요타와트(4 ×10^26 와트)의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자유자재로 사용한다. 다른 별의 핵융합 반응을 자유롭게 조절하고 블랙홀에서 에너지를 만들수 있는 문명이다.

3단계는 인접한 항성의 에너지뿐만 아니라 은하내 1조개에 이르는 항성의 에너지를 사용하는 문명이다. 4 ×10^37와트 정도이다. 수치가 너무 커서 단위를 구분하는 명칭이 없다. 대략 1 요타와트의 40조배 정도로 말그대로 천문학적 단위다. 인류가 3단계 문명에 이르면 우주를 자유자재로 주무르는 존재가 된다고 할까. 이론에만 존재하는 문명이지만 아마 삶과 죽음의 경계는 없어지고 신적인 능력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

카르다쇼프 척도에 의하면 현재 인류문명의 1단계에 이르지도 못한 상태다. 단계 0이라고 할까. 좀 더 세밀하게 구분하면 에너지 소비량 기준으로 0.7단계 정도라고 한다. 인류는 우주의 기준으로 볼때 아직 걸음마도 떼지 못한 문명이라는 얘기다. 과연 앞으로 100년 이내에 1단계 문명으로 발전할 수 있을지가 관건인데, 너무 먼 미래라 별 감흥이 없다.

좀 더 가까운 미래를 내다보는 사람이 있을까?

특이점Singularity이 온다

미래학 분야에서 존경과 비판을 동시에 받는 사람이 있다. 2045년이 되면 인간은 불사의 존재가 된다고 주장하며 그 때까지 살기위해 비타민을 매일 복용한단다. 인간을 뛰어넘는 인공지능 등 인간이 기술의 발전을 따라잡을 수 없는 특이점이 곧 도래한단다. 특이점을 지난 세상을 준비하기 위해 실리콘밸리에서 싱귤래리티Singularity라는 대학도 설립했다.

얼핏 들으면 무한동력기관을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미치광이로 보이지만 이 사람은 세계 최초로 스캐너, 광학문자인식기OCR, 전자악기인 신디사이저를 개발했고 현재는 구글에서 인공지능 연구를 진행중이다. 바로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이다. 미국 PBS방송사가 역대 미국 최고의 발명가 16인으로 뽑았고, 클린턴 대통령으로부터 기술분야 최고영예인 미국 기술혁신상을 받기도 했다.

레이 커즈와일의 이야기를 무시할 수 없는 것이 기술 분야에서 빛나는 업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주장이 기술분야, 특히 컴퓨터 분야의 발전 과정을 분석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커즈와일은 1900년초부터 현재까지의 컴퓨터 성능의 변화를 주목했다. 일초에 1,000불(100만원)짜리 컴퓨터가 수행할 수 있는 계산량을 연도별로 조사해보면 신기한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컴퓨터 성능향상의 변화가 커지는 것이다. 수학에서는 이런 변화를 기하급수적 증가라고 부른다. 기하급수적 증가의 특징은 어느 지점을 지나면 증가의 범위가 너무 커져서, 그래프로 그릴 경우 수직으로 지붕을 뚫고 올라가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특이점이라는 것은 기술이 기하급수적으로 발전을 거듭하다가 어느 시점이 되면 인간이 기술을 따라잡지 못하는 시점을 말한다.

커즈와일은 2029년이 되면 인간 뇌는 완전히 분석이 끝났고 인공지능은 튜링 테스트를 통과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2045년이 되면 인간이 기계와 결합하면서 인류는 새로운 시대로 나아갈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때가 되면 나노봇이 인간의 뇌에 들어가서 인터넷과 연결시켜주기 때문에 인간의 지식과 생각은 거의 무한하게 확장될 수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새로운 언어를 배우기 위해 고생할 필요 없이 나노봇이 들어있는 알약을 복용하면 나노봇들이 뇌를 자극하여 순식간에 언어를 습득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림.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컴퓨터 성능. 머지않아 인간의 두뇌를 능가한다.
저작권: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 커즈와일 테크놀로지Kurzweil Technologies, Inc.

너무 나갔다고 생각하는가? 컴퓨터, 나노공학, 뇌공학의 발전속도를 보면 아예 허황된 얘기가 아닐 수 있다. 최첨단 기술회사에서 일하는 나도 깜짝 놀라는 기술들이 쉴새없이 쏟아져 나오는 걸 보노라면 털끝이 설 때가 있다.

그럼 미래는 터미네이터 영화에서처럼 각성한 인공지능이 주도하는 로봇 군대의 공격으로 인류는 멸종직전으로 가게될 것인가? 대체로 사람들이 신기술을 접하고 떠올리는 것들이 이런 것이다. 특히 인공지능분야의 신기술 말이다.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심한 경우에는 기술개발을 억제해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일부 종교인들은 종말을 얘기한다. 뭐, 그럴 가능성이 있긴 하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미래의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 사실 이 문제는 이미 진행형이다.

실리콘밸리의 그늘 - 소득 불평등

이 글은 <실리콘밸리 견문록>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구글 직원들은 평소처럼 출근버스에 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 날은 주위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직원이 아닌 몇 사람들이 버스를 에워쌌다. 시위대였다. 공공 시설을 사적인 용도로 사용하지 말라는 팻말을 들었다. 버스는 한참을 붙들려 있다 풀려났다. 이 날 시위는 미전역에 화제가 되었고 이후로도 여러번의 시위가 이어졌다.

몇 일후 근처 오클랜드시에서는 구글 직원들을 태운 버스에 벽돌이 날아들었다. 창문이 깨졌지만 다행히 사람은 다치지 않았다. 구글 뿐만 아니라 애플 등 기술기업의 직원을 출퇴근 시키는 버스들이 연쇄적으로 봉변을 당했다. 뿐만 아니라 자율주행 자동차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엔지니어의 집 앞에서도 시위가 벌어졌다. 주변에 살고 있는 이웃에게 “감시, 통제, 자동화로 부도덕한 세상을 만드는 사람”이 여기 살고 있다는 전단지가 뿌려졌다.

구글 버스 시위대의 구호는 이렇다. 구글 등의 사기업에서 운행하는 셔틀버스가 공공 버스 정류소를 사용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것이다. 얼핏 보면 셔틀버스가 잠깐씩 버스 정류소에서 사람들을 태우는 것이 돌을 던지며 시위까지 할 일인가 싶을 수도 있다. 그런데 버스정류소 시위는 어쩌면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번영한 지역의 수면아래에 소득 불균형이라는 더 큰 문제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구글 등의 기술 기업들이 정류소 이용료를 샌프란시스코시에 납부하는 것으로 버스 정류소 문제는 일단락되었다.

아메리칸 드림이 이루어지는 곳

미국을 이끌어 가는 도시 4개를 뽑으라고 하면 금융의 뉴욕, 정치의 워싱턴, 문화의 LA, 그리고 기술의 실리콘밸리를 들 수 있다[1]. 실리콘밸리는 행정구역상의 도시는 아니지만, 개념상 큰 도시로 간주하자. 실리콘밸리는 전세계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성공을 꿈꾸는 특별한 곳이다. 실리콘밸리에서는 국적도, 인종도, 성별도, 종교도 관계없이 오직 아이디어와 실력만으로 회사를 만들어 성공할 수 있다.

꼭 회사를 창업해야만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실리콘밸리는 미국내에서 엔지니어에게 가장 많은 몸값을 제시한다. 아마도 전세계 최고 수준이 아닐까 싶다. 스포츠 선수 몸값이 오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용률은 어떤가. 실리콘밸리의 주요 도시인 산호세의 실업률은 5%대로 미국 최저 수준이다. 참고로, 미국 의회 예산처Congressional Budget Office는 실업률 5%를 “완전고용”이라고 본다. 실업률, 평균소득[2] 등으로 보면 실리콘밸리는 희망의 땅으로 보인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비싼 주거비, 물가 

실리콘밸리 주민들의 지출에서 가장 큰 부분은 무엇일까? 월세다. 미국에는 전세라는 개념이 없으니 집주인이 아니면 월세 세입자다. 음식과 함께 집은 생존과 사회생활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부분이다. 그렇다면 실리콘밸리 주민들은 집세로 얼마나 지출하고 있을까. 부동산 업체 리얼팩츠RealFacts에 따르면 산타클라라 카운티(실리콘밸리의 핵심 지역)의 2014년 평균 월세는 우리돈으로 2백3십만원 정도란다. 입이 쩍 벌어질 정도다. 매월 2백만원 이상이 집세로 나가니까.  1년이면 2천 7백만원이 넘는 액수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집세가 매년 가파르게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산타클라라 카운티의 평균 월세는 전년에 비해 9%가 늘었다.

집 값이 오르면 물가도 오르기 마련이다. 실리콘밸리지역은 교통비, 의료비, 식료품비, 공과금 등 모든 면에서 다른 지역에 비해 생활비가 높다.

소득 하위 계층의 증가 

실리콘밸리에 흘러오는 막대한 부는 소득 상위 계층에 집중되는 듯 하다. 지난 수십년간 미국을 떠받쳐온 중산층이 실리콘밸리에서 힘을 잃고 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2000년에서 2010년 사이에 중산층으로 분류되는 인구가 62%에서 55%로 줄었다. 그리고 시간당 16불(17만원) 이하의 임금을 받는 노동자가 무려 31퍼센트에 달한다고 한다. 하루 8시간씩 일주일에 5일을 꼬박일해도 한 달에 2600불(280만원)을 못 번다는 얘기다. 월세만 내기도 빠듯한 액수다.

시간당 10불(최저임금은 9불이다)을 받는 계약직 노동자는 초과근무를 해도 집을 구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맥도날드 점원 뿐만 아니라 부자 기업을 위해 일하는 셔틀 운전사, 경비원, 요리사들도 계약직 노동자다. 계약직 노동자들은 노동시간을 마음대로 정할수도 없고 일에 따라 불규칙적으로 일정이 짜이기 때문에 받는 임금이 더 줄어들 수 밖에 없다. 또, 일부 노동자들은 의료보험의 적용을 받지 못해 다쳐도 병원을 갈 수도 없고 집에 있는 아이를 놔둔채 회사의 일방적인 스케쥴에 맞춰 출근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런 노동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수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부가 상위 계층에 집중되는 현상을 소득 불균형Income Inequality이라고 부르는 데 소득 불균형은 실리콘밸리뿐만 아니라 미국 전체의 문제다. 소득 불균형은 미국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매우 심각한 문제다. 미국 의회 예산처 보고서에 의하면 1979년부터 2007년까지 30년간 상위 1%의 소득은 275% 증가한 반면 하위 20%는 18%밖에 늘지 않았다고 한다.

짙어지는 그늘 

실리콘밸리는 소득불균형 문제를 극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전세계에서 뽑혀온 기술 엘리트들은 스포츠 스타 못지 않은 임금을 받는다. 뿐만 아니라 무료 점심, 고급 의료 보험, 무료 셔틀, 유급 병가, 충분한 출산 휴가 등 더 많은 것을 누린다. 거대 기술 기업의 직원들은 일상 생활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할인 혜택을 누리고 더 넓은 선택권과 고급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 글의 주요 의제인 주택문제로 돌아가보자. 전세계에서 모여든 고소득 계층이 목돈이 생기면 하는 일이 주택 구입이다. 주택 수요가 급증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실리콘밸리 지역의 주택 공급은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다. 공급보다 수요가 많다보니 주택 가격이 올라가고 그러면서 부동산 투기도 증가했다. 집을 사려고 돌아다녀보면 막대한 현금을 들고 오는 중국 사람들과 경쟁을 하면서 호가listing price보다 20%정도 웃돈을 주고도 집을 구하지 못하는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이러다 보니 이 지역에서 이전부터 살던 토박이들은 갈수록 집을 산다는 건 꿈꾸지 못하고 월세로 만족해야 하는데 월세마저 자고 일어나면 천장을 뚫고 있으니 절망스럽지 않을까. 월세와 생활비를 감당하지 못하고 변두리로 밀려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기술 엘리트에 대한 분노가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다.

난 솔직히 답을 모르겠다. 한편으로는 엔지니어로서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드는 대의에 나를 맡겼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현실은 첨단 기술과 담이 없어진 세계가 소득 불균형을 심화하고 중산층을 무너뜨리는 데 일조한다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다. 그래도 난 여전히 기술과 열린 세계가 더 좋은 세상을 만든다고 믿고 싶은데 가슴 한 구석에선 죄책감이 자라고 있음을 부인하지 못하겠다.

22번 호텔[3] 

자정이 지난 금요일 새벽 어느 버스 정류장, 산호세에서 출발하여 팔로알토로 향하는 22번 버스에 허름한 차림의 사람들이 천천히 타고 있었다. 모두들 노숙자들이다. 실리콘밸리에서 유일하게 24시간 운행하는 22번 버스를 사람들은 22번 호텔Hotel 22라고 부른다. 집 없는 이들이 2달러를 내고 하룻밤을 묵을 수 있는 곳이다. 

버스 뒤편의 구석진 곳에 아빠와 딸이 자리를 잡고 있다. 딸은 긴 좌석에 가방을 배게삼아 잠을 자고 아빠는 그 뒷좌석에서 앉은채로 잠을 청하고 있다. 아빠는 실직 상태고 노숙자를 위한 쉼터에 들어가고 싶지만 자리가 없어 기다리고 있다. 아빠와 딸은 밤새 덜컹거리는 버스안에서 아침을 기다릴 것이다. 그리고 5학년짜리 딸은 아침이 되면 스쿨버스로 갈아타고 학교에 갈 것이다.

아빠와 딸은 덜컹거리는 버스안에서 어떤 꿈을 꿀까.

[1] 매트 커츠의 글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 네 개는 어디일까요?" 참고. https://www.mattcutts.com/blog/four-city-theory/
[2] 본문에서 소개한 실업률, 평균소득 등의 통계 자료는 각각 다른 보고서를 참고로 했다. 또한, 경우에 따라 샌프란시스코, 산호세 등의 개별 도시별 통계를 인용하기도 했다. 따라서, 각 통계치가 다른 기준과 조건을 갖고 있음을 미리 얘기해 둔다. 다만, 인용한 통계자료가 일반적인 실리콘밸리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고 글의 논지와도 맞다고 생각한다.
[3] 22번 호텔에 대한 산호세 머큐리 신문의 기사. http://www.mercurynews.com/bay-area-news/ci_24429126/homeless-turn-overnight-bus-route-into-hotel-22